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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서울역 철도박물관 앞에 강우규 의사 의거터 표지석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차후 탐방 시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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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우 曰愚 강우규 姜宇奎 1859.9.6~1920.11 의사 義士
강우규 의사는 1859년 6월 5일 평안남도 덕천군 무릉면 제남리에서 가난한 농가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1883년 함경남도 홍원군 영덕리로 이주하여 함경도 일대에서 민족교육과 기독교 전도사업을 통하여 독립운동의 역군을 양성하였고,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국권이 상실되자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후 1915년 길림성 요하현 신흥동으로 이주, 광동학교(光東學校)를 설립하여 청소년의 민족의식 고취와 기독교 전도사업을 통한 민족 계몽운동을 펼치셨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료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이후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의 요하현지부장을 맡아 활동하셨다. 1919년 8월 5일 폭탄을 품은채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서울에 도착, 9월 2일 남대문 역두(현 서울역)에서 새로 부임하는 신임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향하여 폭탄을 투척, 세계만방에 대한의 독립정신을 알리었다. 이듬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