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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은 명문을 품고 명문은 걸출한 인재를 배출하나니 함안 백이산자락 명관에서 인천이공 태준은 1883년에 출생했다. 서당공부를 하다가 23세에 상경, 온갖 난관을 뚫고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여 28세에 의사가 돼 동병원에 근무하였다. 이때 입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치료 중 조국 독립에 일생을 바칠 각오로 중국을 거쳐 김규식 박사 등 동지들과 함께 몽골로 가서 군관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에 동의의국을 개업, 당시 몽골에 창궐한 수 많은 성병환자를 살려내니 신의로 추앙받아 국왕 보그드 칸은 선생을 어의로 예우했다. 동의의국은 독립운동가들의 의지처가 되었고, 선생은 많은 활동자금을 제공했다. 이즘 혁명 러시아 정부로부터 원조 받은 금괴를 상해임시정부로 운반하는 등의 활약을 하면서 상해에서 약산 김원봉을 만나 그의 부탁으로 헝가리 출신 폭탄제조전문가를 대동, 마지막 금괴를 가지고 상해로 가다가 왜군 장교에 의해 피살되니 1921년 38세 때였다. 애석한지고. 선생의 순국을 이에 새겨 오래 기억코자 한다.
2016년 4월 일 소설가 전 신라대사범대학장 족손 규정 삼가 짓다. 방손 종찬 제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