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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지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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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여순사건 당시 여수경찰서 충무지서가 있었던 곳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밤 9시경에 시작되었는데, 봉기군은 밤 10시에 정문을 출발하여 여수읍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신월동 14연대로부터 3.3km 지점에 있던 봉산지서를 습격한 14연대 봉기군은 지금의 서초동학교 앞을 지나 자정 무렵 충무지서 앞에서 이들을 저지하려는 경찰과 첫 교전을 벌였다. 당시 지서의 당직근무자와 잠결에 달려 나온 경찰은 몇 명에 불과했다. 중무장한 14연대 일부 군인들은 이들을 일방적으로 제압하고 그 여세를 몰아 여수경찰서를 20일 새벽 3시경에 공격하였다. 14연대 군인들의 봉기를 알게 된 이승만 정부는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계획하였다. 10월 23일 순천을 탈활하고, 23일 오후부터 여수 진압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작전 중 반군토벌전투사령부 사령관(송호성 준장)이 인구부를 지나면서 읍내를 사수하던 봉기군에게 저격당해 부상을 입고 미국 종군기자가 사망하는 사고를 당해 후퇴하였다. 1차 진압작전에 실패로 전열을 정비한 진압군은 이후 해상의 함포사격의 지원을 받으며 27일 새벽 4시경에 전 시가지를 불태우고 다음 진압작전을 이어갔다. 여순사건 당시 이곳 충무지서 부근은, 진압군의 시가지 탈환 공격의 교두보였던 한국전력 여수지사, 고리(다까세) 농장의 미곡창고 등이 있던 중요한 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