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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대구 3 · 1운동의 전개 양상과 특징 49 전민족적 항 쟁이자 1920 년대 민족운 동의 밑거름 이 된 대구의 3·1운동 대구 3·1운 동은 1919년 3월 8일부터 4월 26일까지 두 달간에 걸 쳐 기독교·불 교·천도교 등 종교계, 농민·노동자·교사·학생·청년·여 성·상인·일반 시민 등 다양한 계층과 직업을 가진 사 람들이 어우러진 전민족적 항쟁의 담대한 여정이었 다. 대구 3·1운동은 다양한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먼저, 역사의 주체로서 민족 개념을 확고히 인식하 게 하였다. 둘째, 공화주의 이념에 기초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이바지하였다. 셋째, 1920년대 이 후 국내외 민족운동의 노선과 이념 분화를 통한 민 족운동에 이바지하였다. 넷째, 민주주의와 인권이라 는 근대 담론을 담고 있었다. 결국, 대구의 3·1운동은 식민지 사회의 이중적 민 족 구조와 민족 내부의 계급모순을 해소하려는 민 족·민주운동으로서의 역사적 성격과 의의가 있었다 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대구 3·1운동은 1920년대 민 족운동의 저수지가 되어 다양한 이념과 폭넓은 운동 노선의 독립운동이 펼쳐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경운대학교 교양교육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1운동 논문으로 「일제강 점 기 하윤실의 3·1운동과 불교개혁운동」, 「일제강점기 도리사 승려 김경환의 독립운동」, 「동화사 지방학림의 3·1운동」, 「3·1운동 전후 독립에 대한 인식과 독립운동 」 (『한국사학사학보』 38, 2018) 등이 있다. 저서로는 『근대 한국의 자본가』(2010년 학술원 우수도서), 『서상일의 정치·경제 사상과 활동』(2020년 세종도서) 외 다수 가 있다. 필자 김일수 대구3·1운동 탄압을 주도한 경북경찰부 건물 대구3·1독립운동기념비 (대구시 중구 동성로, 필자 제공) 3·1운동 당시 경상북도 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