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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희산 김승학의 《독립신문》 발간과 『한국독립사』 편찬 전말 49 과 도산선생이 나의 숙소로 내방하고 아래의 조 건하에 인쇄소와 신문사가 개방되었다…  이 리하여 신문사와 인쇄소가 부활하였으니 때는  1921년 4월 중순이었다. 신문 속간을 토의한 결 과 다음과 같이 부서를 조직하였다. 사장 김승 학, 주필 박은식, 편집국장 차리석, 기자 조동호· 김문세·박영·이윤세, 인쇄소 책임자 고준택이었 다. 그 뒤 1923년 인쇄소는 주식회사로 독립시 켰는데, 그 동안에 (일제의 책동으로) 인쇄소 이 전이 28회였으며 한 번 이전할 적마다. 마차 2 대와 신문 활자를 운반할 인력거가 20여대가 필 요했다. 또 인쇄소 이전의 후보로 항상 빈 건물  1채를 예비하여 두었다가 어느 때던지 수색하 러 나간다는 통지가 오면 밤이라도 당일로 이전 해야 한다. 인쇄소는 신문사 직원들도 알지 못 하고 나와 고준택만이 알았으며, 또 인쇄용 물 품 구입은 내가 담당하고 인쇄잉크 사오기, 한 문활자 부족분을 구입하기, 용지매입, 원고 송 달 등등 모든 것을 내가 전임하였다.”  독립신문 중문판의 발간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보도 1922년 7월 중순부터 중문판(中文版)을 간행하였 는데, 이는 중국인들에게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정당 성과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선전활동이었다. 중문판 은 중국 전국의 관공서·사회단체·교육기관에 무료로 배부되었기 때문에 제작·발송비의 부담이 컸다. 그 러한 자금은 백광운(본명 채찬)·장기초 등 남만주 독 립군 동지들과 통의부(統義府) 계열의 지원으로 이루 어졌다. 김승학의 회고록 『망명객 행적록』(희산김승학선 생기념사업회, 2011) 개정판(김송뢰 저) 『희산 김승학 한국독립사 일 대기』(말굽소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