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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직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충남 논산군 두마면(豆磨面)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지역의 유지이자 자산가인 부친 배대식(裵大植)과 함께 농촌자력갱생운동을 펼쳐왔고 인근의 빈민들에게 양곡을 나누어 주는 등 선행을 베풀어 주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4월 1일 오후 4시경 향리인 두마면 두계(豆溪) 장터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날 오후 6시경 그는 일본인 순사를 뿌리치고 장터에 운집한 군중들을 향해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격동된 장꾼들이 시위대를 형성하여 다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오후 7시경에 이르러서는 시위군중이 1,00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대의 일부는 일제침략과 수탈의 교량 역할을 하던 철도선로의 파괴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18일 공주지방법원 강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공무집행 방해 등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4년에도 만세시위를 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군산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지 3일만에 고문 여독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