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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여 자유의 상징인 이 비를 보라
생명보다 귀중한 자유의 상징을
忍苦(인고) 딛고 일어선 산 호흡이여
억압을 가르고 사선을 넘어선 쟁취의 맥박이여
그대 자유의 여신 독립의 포로
아! 어이 잊으랴 함평군의 열사들을
기미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 독립운동에 참석한 학생 및 유생들 수 명이 본군에 귀향 동지를 규합하고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만들어 같은해 3월 26일, 함경보통학교 졸입식 후 거사를 이르켰다. 선두에 선 열사를 따라 보통학교 생도와 군민이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손에 태극기를 들고 함평경찰서를 포위 일본 경찰 및 헌병들의 총칼에 맨손으로 항쟁 하였으니 울분에 찬 가슴들이 뿌린 한의 피가 얼마던가.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하여 희생당한 십 여명의 사상자와 군민들의 피 맺힌 분노의 불길은 전군적으로 퍼지게 되었으니 신광 대동 해보 월야 주재소를 교란 시키고 문장 나산 학교역과 손불 엄다 소재지에서 반일구호의 행진과 밤이면 봉화 투쟁이 계속되었다. 손불면 백초동 부락에 신정교를 설립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일제 무단정치에 항거하다 폐교 당했고 군 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다. 이 민족에 독립의 날을 달라고 끝까지 왜치던 열사들은 악랄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목포형무소에서 대구형무소로 이감되었고 옥사 혹은 출옥 후 병사하여 민족 제단 앞에 생명을 바치었다. 이제 열사들의 피뿌린 희생으로 서기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을 맞이해 나라를 세웠으니 이분들의 거사야말로 역사에 길이 빛날 공적이 되었도다. 애정 어린 열사들이여. 민족독립을 염원하던 영혼들이여. 거룩한 풍의 길이 빛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