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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6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1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③ 격문 「동정표시 경고문 제1호」를 시내 곳곳에 뿌렸 다. 또 4월 13일 자제단의 박중양과 구장 백응훈에 게 ‘암살’을 경고하는 내용의 격문을 보냈다. 그리고 「근고(謹告) 동포」, 「경아(警我) 동포」, 「관공리 동포」, 「경고 관리 동포」 등의 격문을 대구 곳곳의 장소와 도내 한국인 군수, 면장, 군과 면의 서기, 한국인 상 인 등에게 배포하였다. 격문의 내용은 ‘독립운동 참 여 촉구’, ‘폐점 투쟁’, ‘일본 화폐 배척’ 등을 촉구하 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혜성단은 3·1운동을 격문 운 동으로 확대하면서, 지속적인 독립투쟁으로 승화시 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1919년 5월 중순 김수길이 일제 관헌에게 검거되는 것을 계기로 대부분의 단원이 검거되었다. 1919년 7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제령 7호 위반, 협박 및 사문서 위조행사 등의 혐의로 김수길은 징역 2년 6월, 이영옥·이명건·허성도·이기명·이종헌·최재화·이 수건·이덕생 등은 각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그 런데 김수길·이종식·이영옥·이명건(이여성) 등은 대 구복심법원 판결에서 원심판결을 취소한 일제의 사 법당국에 의해 오히려 형량이 높아져 김수길 징 역 4 년, 이종식·이영옥·이명건 등은 징역 2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재건 달성친목회의 만세운동 지원 1913년에 재건된 달성친목회는 3·1운동이 일어나 자 한국의 독립에 대한 전망을 가지면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그 가운데 재건 달성친목회는 조선 남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상하 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말 혹은 4월 초 대구의 자산가인 정용기(鄭龍基) 를 만나 운동자금 지원을 요구하였다. 다음으로 경 남지역 자산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나 섰다. 또한 같은 해 4월 15일 서상일은 만주(滿州) 대 한독립의군부의 자금 모집책인 정운해(鄭雲海)를 경 남 통영의 서상호에게 보냈다. 아울러 서상일은 신 흥학우회 회원인 문상직(文相直)으로부터 전해 받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포고문 및 강령을 확산시켰다. 대구경찰서 앞 대구 거리 풍경(출처 『조선풍속풍경 사진첩』, 1920)대구 자제단 조직 보도 기사 (『매일신보』 1919.4.14)  3월 8일 서문시장 시위에 참가 한 대구고보생 하윤실(『조선일 보』 193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