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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사 추모비. 고헌 박상진의사는 1884년 12월 7일 울산 송정에서 한말 승지를 지낸 전통적인 유가에서 태어나 1902년 한말 의병장인 허위(1907년 11월 13도 창의군을 지휘)의 문하에서 수학한 뒤 1907년 양정의숙에서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을 받았으나 경술국치로 사퇴하고, 1911년 만주로 건너가 허위의 형인 허겸과 손일민, 김대락, 이상용, 김동삼과 교류하였다. 1912년 대구에서 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을 설립하여 만주의 곡물상과 연락망을 구축하여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1913년 풍기에 설립한 채기중의 대한광복단과 제휴하여 1915년 7월 15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총사령에 추대되었고, 곡물상을 이용한 정보 연락을 하면서 4대 행동강령으로 「비밀.폭동.암살.명령」을 정하고, 1916년에는 충남, 황해도, 전남,서울,삼척,인천 등지에 조직망을 구축하고, 만주의 신흥학교 등과 연결하면서 군자금 모금에 힘을 쏟았다. 1916년 권총을 구입하여 만주에서 국내로 들여오다가 피체되어 징역 6월형을 치렀고, 출옥 후 일제식민지 지주체제에 안주하는 친일부호에게 배당금통보서를 먼저 보낸 뒤 처단하는 포고문을 내려 1917년 11월 10일 경북 칠곡군의 부호 장승원과 1918년 1월 24일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함으로써 1918년 조직이 탄로나 모친상을 계기로 경주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3년 후 1921년 8월 11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