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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하여 국내외 각지에서 정치,경제,사회, 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강원도에서는 우선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조직한 대한독립애국단 산하에 강원도애국단이 철원에서 1919년 8월 조직되었다. 평창과 양양에는 도단의 하부조직으로 군단이 조직되었고 특히 평창군단에서는 창일계를 조직하여 독립자금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해 독립운동 자금 모금 과정에서 비밀이 드러나 관계자들이 모두 체포되는 불운을 겪었으며, 애국단의 활동도 끝나고 말았다.
한편 국내에서 합법적인 단체로 1927년 2월 결성한 신간회의 강원도지회가 1927년 7월 춘천기독교회관에서 창립되었다. 강원도에는 양양,강릉,울진,고성,삼척,양구,원주에 지회가 결성되어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간회는 8월 29일을 국치일로 정하고 이날을 밥없이 죽을 먹으며 국치를 마음속에 되새기도록 하였으며, 노예교육을 반대하고 조선본위의 교육실시를 요구하였다. 또한 인권옹호운동, 만주이민단대 등의 정치적인 요구도 있었지ㅏㄴ 계몽운동을 사거나 봉건적인 습독을 타파하기위해 활동하였으며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던 농민,노동자 운동과 학생운동에 적극 개입하여 사상을 지도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활동도 전개하였다. 강원도에서는 양양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으며 주로 영서지역 보다는 영동지역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아울러 신간회의 자매 단체이던 근우회 지회도 춘천,양양,강릉에 결성되어 여성문제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야학 실시, 문맹퇴치 여공파업의 진상조사, 광주학생운동 및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도와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3.1운동 이후 학생운동은 일제의 민족 차별과 식민지 노예교육에 항거하여 동맹휴학 비밀결사, 단체조직, 계몽운동, 항일시위 등으로 나타났다. 동맹휴학운동은 때에 따라 다양한 계기로 전개되었는데, 1921년 11우러에 삼척보통학교의 동맹휴학운동이 있었고, 1923년 4월에는 고성보통학교, 1923년 5월에는 양양보통 학생들의 동맹휴학운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