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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든 중 작금 전국 각계 각층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민주화의 함성은 노사쟁의로 번저왔으니 국내 굴지의 본 사회가 어찌 예외일 수 있으랴. 역시 이 직장에서 불뿜는 쟁의가 극에 달하는 순간 불의의 사고로 군이 참변을 당하였다. 이는 곧 우리나라 일천만 근로자 중 첫번째 희생자인 것이다. 이 돌연한 변고에 전국민은 내 가족을 잃은 듯 슬퍼하였고 국내외 언론기관은 1면 머릿 기사로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군의 빈소에는 행정부 및 각 정당 사회단체 전국 노동자 대표 등 수십만이 영전에 분향 호곡하였고 7일장으로 이 곳 관풍리 선영 하에 안장하였으니 군의 나이는 겨우 22세인 한 떨기 꽃송이다. 군은 조선왕조 500년 제4대 세종대왕 아드님 영해군이 상조요, 기묘 명현 시산군 문민공이 15세조이며 문학 행의로 향당에서 경앙한 휘 가춘소검당이 7세조요 특히 자라 효자로 명망이 드높아 성균관장의 포양을 거처 효자비가 세워진 휘 김기회당공이 조고이며 부 정수 모 해주오씨와의 사이에 광복 후 병오 11월 29일에 제 2남으로 태어나 겨우 22세인 정묘 8월 22일 생을 마쳤다. ...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