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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같이 하는 학우들과 훗날의 큰 일을 위하여 손을 잡고 3.1의거의 날을 맞았다. 여러 낮밤 공작 끝에 3월 8일 대구장날을 기하여 서문시장에 모여 쌈섬 위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운집한 부민들과 더불어 시위행진에 들어 가서 만세소리 천지를 뒤흔들며 일본 관헌과 맞서 종로는 피 바다를 이루었다. 2차 시위는 3월 10일 덕산새장으로 약정 엿장수로 변장하여 전단을 운반 사방에서 일제히 만세소리 일어나자 일헌은 80병대까지 동원 총검으로 포위망을 좁혀 오니 공은 주동자는 내라 하고 잡혀 모진 고문 끝에 연소자로 감형되어 징역 6개월을 치렀다. 출옥하자 대릉과 연락망을 두고 평양 숭실대학에 재학 중 평남도청 폭파 혐의로 잡혔다가 풀려 나자 재헌으로 개명하고 밀양으로 잠입하여 집성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고인덕 동지와 접촉 중에 다시 일경의 추적을 받고 대구로 와서 미국선교사를 의지하며 임정 소식을 자유지에 실어서 군자금을 모집 이정호 동지를 상해로 밀파하는 등으로 활약하던 중 세계대전의 발발로 예비 검속 당하여 광복의 날까지 옥중에서 고초를 겪었다. 1968년에 독립 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