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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대구 3 · 1운동의 전개 양상과 특징 47 동(1919년 당시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의 공동묘지 북쪽에서 강윤옥(姜潤玉)과 장용암(張龍岩) 등 두 사 람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어 4월 26일 달성군 공산면(현재 대구 동구 미대 동)의 채(蔡)씨 동족부락의 청년들은 채학기(蔡鶴基) 를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이에 미대동 청년들은 1919년 4월 26일 오후 10시 무렵 미대동 동쪽의 여봉산(礪峯山)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고 창한 뒤 4월 28일에도 여봉산에 올라 대한독립만세 를 고창하였다. 그들은 팔공주재소의 일본 경찰에 게 체포되어 대구 헌병대로 압송된 뒤 강압적인 조 사에서도 ‘동양척식회사를 철폐하라’, ‘조선인도 자 주력이 있다. 우리 민족을 노예화하지 말라‘고 역설 하였다. 친일반민족행위 조직 자제단(自制團)과 비밀결사 혜성단 대구에서 3·1운동이 확대되자 일제 관헌은 친일파 들을 동원해 이른바 자제단을 조직하였다. 자제단은 1919년 4월 6일 오전 9시 대구부청에서 대구 부윤 나카노(中野), 중추원 찬의 박중양, 참여관 신석린 (申 錫麟), 달성군수 등 72명이 참석한 가운데 ‘동포가 불 령선인(不逞鮮人)에 선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 들어졌다. 자제단은 3·1운동을 ‘폭거’로, 운동 참가 자를 ‘흉도’로 규정하였다. 3·1운동을 방해할 목적 으로 만들어진 전국 각지의 자제회, 자성단(自醒團), 자위단 등 반민족행위 조직 가운데서 대구의 자제단 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대구에서 3·1운동이 이어지고, 자제단이 만들어지 는 상황에서 1919년 4월 17일 3·1운동을 계기로 독 립운동을 지구전적으로 전개하고자 하는 비밀결사 혜성단(慧星團)이 조직되었다. 여기에는 3·1운동에 참여하였던 계성학교의 김수길(金壽吉)을 비롯한 허 성도(許聖徒)·이명건(李命健, 이여성) 등과 목사 최재 화(崔載華) 등이 참여하였다. 혜성단은 대구에 본부 를 두고, 서울, 상주 등 각지에 지부를 설치할 계획이 었다. 사실은 혜성단의 주도 인물들은 혜성단 결성 이 전부터 격문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곧 1919년 4월 초 일본인과 금전 및 상품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구 3·8 서문시장 만세시위 참가자 재판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19.4.18) 대구 혜성단원 재판 판결문(대구지방법원 (1919.7.19, 이상 국가기록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