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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지역 순회를 마친 뒤 1929년 7월 여운형은 중국 상하이 의 경마장에서 영국경찰의 협력을 받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된다. 몽양은 본국에 송환되어 1930년 4월 26일 3년 징역을 선고받았고, 1936년 6월 9일 상고심에서도 3년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독방생활을 하게되자 평소 세계 각처로 활발하게 돌아다녔던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하여 신경통에 시달리고, 털이 허옇게 세고, 몸무게도 80kg대에서 60kg대로 줄었다. 또 수감 생활중에 수인들이 잘 걸리는 치질 때문에 고생했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자 그는 평정을 되찾아 더없이 화평한 모습으로 지냈다. 그러나 일본인간수가 '내가 7년동안 많은 정치범을 보았지만 모두가 분노와 번뇌와 불평으로 지내는데 선생만큼은 항상 명랑, 화평하니 이상하다'고 말하자 몽양은 '내가 한일이 양심적이고 자각적이므로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 기쁠 뿐이니 불평이 있을 까닭이 있는가.'하고 반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