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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까지 거리에 다닐 수 없었다. 낚시터는 통금 예외 지역이라는 소리를 듣고, 세운 형, 효남 형, 영희 언니, 진숙 언니가 산책을 나갔다가 통금 위반으로 파출소에 잡혀갔다. 당시에는 모두가 놀라고 무서워 어찌할 바를 몰랐던 사건이었지만, 우린 지금도 그 얘 기로 웃는다. 몇 해 전, 그 추억을 찾아 춘천 에티오피아의 집을 찾았지만, 예전의 모 습으로남아있는것은없었다. <언중의서>를보면감회가새롭다 73년이었던가? 어느 날 영일 형이 시커먼 표지의 노트 묶음에 <언중의 서>라는 기발한 조어를 만 들어 표지로 장식한 것을 PD실 책상에 올려두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무기명으로 적 으라고. 그때, 그노트가45년을이어오리라고생각한사람은아마없었을것이다. 무엇이든시작은작고소소했다. 1972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린 아홉이었다. 다 함께일 때도 있었고, 아닐 때 도 많았다. 그중 한 명은 다른 학교로 갔고, 한 명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돌아오고 있 고, 한명은우리의가슴속에묻었다. 남은우리여섯은지금도가족처럼지낸다. 세운 형이 해외 지사로 나가던 해부터, 영희 언니, 진숙 언니, 나 이렇게 셋은‘고급 주부관광단’이 되어 세운 형의 배려 속에 해마다 여행을 한다. 영승 형이 우리와 함께 였을 때, 가까운 후배들을 모아 함께 환갑파티도 했다. 돈 벌어 우리를 기쁘게 해 주는 친구가있어행복하다고우리는함께웃는다. 함께청춘을보냈고, 함께어른이되었고, 함께나이들어간다. 각자의방법으로서로를아끼고사랑하며. 그리고VOU라는인생의선물에늘감사한다. 기별 Essay | 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