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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배달민족의 푸른 얼이 타오르는 언덕에 우람찬 이 빗돌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이 고장에서 태어나신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민족정기를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이곳 대소는 충청북도 음성군의 작은 면에 속하지만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고려 떄 大鳥谷所가 있었다 하여 大鳥谷面이라 하였고 고종 광무 십년에 음성군으로 편입되어 1914년에 군,면 통합에 따라 大鳥谷面의 大자와 충주군 당시의 所谷面의 所자를 따서 大所面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1910년에 나라 잃은 겨레는 가이없는 슬픔으로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서 기아에 허덕이며 생존권 마저도 박탈당하는 처참한 생활 속에서도 독립의 그날을 위하여 기회만을 기다리다 드디어 一九一九年四月二日장날 오미장터에 구름처럼 모여든 일천여 군중들은 태극기 높이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던 그날, 태극기의 물결과 함께 희생의 두려움없이 모여든 이틀동안 시위하였으니 장하도다 배달의 얼 하늘에 사무치도다 일제의 재판 기록을 보면 의거를 주도한 이성교(李聖敎), 임백규(林白圭),임경순(任璟淳), 김달년(金達年), 김동식(金東植) 송인식(宋寅植) 박병철(林炳喆) 박제성(朴濟成), 이철우(李喆雨), 류해길(柳海吉),이용학(李容學),민병철(閔丙哲),박영록(朴永綠) 님 등이 사전에 밀의하여 제반 준비를 갖춘 연후에 거사일이 당도하여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군중의 선두에서 지방관서를 일시에 습격하고 불을 지르니 탄압 행정은 마비되고 일경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치는 지경에 이르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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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천 수비대의 증원 내습으로 인하여 군중들은 해산되고 李聖敎, 林白圭 2인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류해길(柳海吉)은 잠적하여 지금까지도 그 행방을 알 수 없고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이성교는 일경의 심한 감시와 압박, 그리고 생활고로 인하여 교수 자살하여 고결한 최후를 마침으로 호국의 영령이 되었으니 그의 우국충정과 정의감은 우리들의 귀감됨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당시의 애국투사들이 재판 결과를 보면 林白圭(六月刑),金東植(六月刑),金達年(六月刑),宋寅植(罰金刑),朴炳喆(罰金刑),李喆雨(二月刑),李容學(笞刑), 閔丙喆(笞刑), 朴永綠(笞刑),朴濟成(笞刑) 등이 모진 옥고와 수난을 당하였고, 기록에는 없으나 수 많은 애국투사들의 핍박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 피빛으로 물들여진 36년의 역사, 8.15광복의 벅찬 감격과 함께 의당히 선열들의 우국 충정을 기리고 천추에 그 뜻을 전했어야 함에도 이를 이루지 못하고 이제서야 작은 빗돌에 역사의 공적을 새겨 전하게 됨을 죄스럽게 느낄 따름이다. 이제 기미년 당시의 의거를 되새기면서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기미년3.1독립만세 추념비 건립추진위원회를결성하고 일제의 총칼에 맨주먹으로 항쟁하였던 이 고장 애국 지사들의 거룩한 구국정신을 높이 선양함은 물론 후세들에 길이 계승코자 이곳에 추념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