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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畊夫) 신백우 선생은 어려서는 신채호 선생과 함께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그뒤 서울의 측량학교, 외국어학교,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수료한 뒤 청주 측량학교와 서울 태극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소년(少年)》의 편집과 신민회 및 대동청년단에 관여하며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후에는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는데, 신채호와 함께 이승만노선에 반대하여 손을 떼었다. 그 뒤 만주의 서로군정서와 광한단에서 잠시 활약하다가, 1921년에 귀국하여 조선노동공제회의 중앙집행위원이 되었고, 이어 무산자동지회, 조선노동연맹회, 신사상연구회 또는 화요회, 조선노농총동맹등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이때의 신백우는 사회주의자이었으므로 1924년 공산주의운동 관계로 붙잡히기도 하였는데, 1925년 출옥한 뒤에는 공산주의계열과 절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