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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부 박승혁과 이봉옥여사의 2남 3녀중에 장남으로 서기 1898년 8월 24일 김포군 양촌면 누산리에서 출생하여 양곡공립 국민학교(양곡공립보통학교)를 거처 경기고등학교(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 영재로 재학시에도 애국충정을 불사르다가 드디어 졸업을 앞둔 22세의 약관으로 기미년(서시 1919년)3월 1일 손병희선생을 위시한 33인의 선열들과 회동 서울파고다공원에서 대한독립선언문을 선포함에 따라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종로 덕수궁 대한문앞 남대문로 각국영사관앞을 누비며 시위하시고 3월 5일 오전 9시경 서울역광장에서 대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시고 민족자결을 외치시다 고향인 김포군 양촌면 누산리로 잠입하시어 3월 19일 동지 6명들과 규합 누산리 안승환씨대 골방에서 태극기및 선언문 격문 수백통을 작성하여 동지인 박승각 박승만 정억만 안승환 전태순 오인환으로 면내를 분담 배포케하여 면민규합에 성공한 후 3월 23일 양곡장날(오라니장)을 기하여 수백명을 동원 선봉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며 시위주동하시다 정보에 따라 출동한 왜헌병 수십명의 무차별한 총격 앞에 희생되어 선생및 6명이 전원체포 김포경찰서로 연행되어 악형에 시달리시다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어 미결감에서 수개월간 고문을 당하시면서도 수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시다 드디어 치안유지법 위반등의 죄명으로 2년의 징역을 선고받아 만2년의 옥고를 치르시고 출감하셨으나 왜경의 끊임없는 감시에 못견디시고 강원도지방으로 방랑과 유랑생활을 하시다가 옥고와 고문으로 인한 병고에 고향으로 귀향하시어 투병생활도 약석의 효력없이 나라 잃은 한을 못푸신채 영면하시니 향년 37세요 서기 1934년 1월 24일이다. 서기 1982년 8월 15일 조국의 자주독립운동과 국가발전에 헌신한 지대한 공훈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으시고 정부당국에서 서기 1986년 6월 25일 공적비를 건립하여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