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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엿보든 중 부산에서 체포되자 벙어리 노릇으로 기이한 꾀를 써서 석방되었다. 그 뒤에 무릇 10년동안 독립단과 연락하여 자금조달에 애쓰든 나머지 또다시 직접행동을 계획하는중 어머님상을 만나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가 이어 34년 정월에 체포되어 2년 6개월의 징역판결로 서울대구 감옥에서 동지 이종암등과 함께 복역하고 36세 10월에 출옥하였으나 일찌기 악독한 고문으로 갈비뼈가 부러졌든것 때문에 몸을 못쓰고 입원치료하든중 동지 고인덕의 옥사한 소식을 듣고 병이 더하여 마침내 1927년 정유 6월6일 37세로 세상을 여의었다. 때에 아들 달진은 병으로 누워있었고 고향에서는 사회단체연합장으로 모시고자했으나 왜정의 탄압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선생을 쓸쓸히 보낼수밖에 없었지마는 천도 무심치아니하여 가신지18년만에 조국은 광복되고 또 광복된지 20년이 지났을망정 늦게나마 선생의 뜻과 행적을 돌에 새겨 고향땅 많은 사람들 다니는 곳에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으니 이 어찌 느꼅지 아니하냐.
겨레의 자유를 위해 조국의 제단에 생명을 바친 투사의 혼이 깃드신 곳 만고에 끊임 없이 흐르는 저 낙동강 물도 목메여 울어 예는 여기 동포여 이 앞에 이르거든 부디 님의 뜻 가슴에 새겨 내 나라 빛낼 것 잊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