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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와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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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와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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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선생은 보훈처 공훈록에서 찾을수가 없다. 하지만 천안시에서 운영하는 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서훈이 되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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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金鼎鎬)[?~1955]는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출신으로, 군자금 모금과 광복회 활동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김정호의 다른 이름은 김승호(金昇鎬)이다. 양성읍[현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에서 청년들을 모아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여 군청과 경찰서를 불사르고 일본인을 희생시켰다. 그 후 상해 임시 정부의 명을 받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독립단원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다시 독립 자금 모금의 책임을 지고 국내로 밀입국하여 광복회원이 되었고, 서울 중앙 우체국에서 홍찬섭과 함께 5만 원 상당의 금액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청주에서는 부호 민 모에게 독립 자금을 요구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울로 도망하여 숨어 있다가, 1927년 체포되어 7년의 징역을 살았다. 이들 광복회 회원들은 악독한 고문에도 애국지사의 명단이나 투쟁 내용을 일체 발설하지 않았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법정 투쟁을 전개하며 군자금을 지원한 인사의 이름도 함구하였다. 일본 경찰은 연루자를 찾기 위하여 온갖 악형을 가했고, 이들 독립회원들은 출옥 후 고문의 휴유증으로 대부분 요절하였다. 김정호는 출옥 후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다시 6개월의 옥고를 치렀으며, 1942년 상해 임시 정부의 밀령으로 중국을 벗어나다가 신의주에서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정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 공로 훈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