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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89-1 한성화교학교에 있는 장개석(장제스) 총통 동상을 탐방하기 위해서 찾았다.
원래 명동 전 대만대사관 장개석 총통, 손문 동상이 이곳 1992년 한성화교 중고등학교로 이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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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다방면에서 한중연대의 실익을 확인하고 제국주의 일본을 상대로 한 항일전선을 공고히 구축하고자 했다. 1939년 1월 장제스는 충칭에서 한국의 좌·우파 영수들을 만나 한국인들이 중국의 항일공작에 배합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복국운동의 힘을 배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일환으로 기존에 있던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외에 1940년 가을에 창설한 한국광복군을 승인하기도 했다. 1940년 4월 한국독립당·국민당·조선혁명당 등 우익 3당은 치장(綦江)에서 연합대표대회를 소집하고 정식으로 중국 당국에 중국 영토 내에서 한국광복군의 성립을 승인해 줄 것을 결의하고 요구하였다. 이에 장제스는 1940년 5월 한국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이를 기회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9월 17일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성립대회를 거행하였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공동의 적 일본에 대하여 선전을 포고한 미국·영국·중국 3개국은 협동 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군사동맹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태평양 방면 중국 전구 총사령관에 장제스를 임명하고 중국에 대한 군사지원 체제를 본격적으로 수립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 국민당 측 역시 한국광복군 운영 문제를 일단락하는 한편 광복군의 부서 개편을 단행했다. 특히 1942년 일본이 한반도에서 한국의 청년들을 대규모로 징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졌다. 이에 장제스는 한국독립운동을 시의 적절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하고 우티에청(吳鐵城)에게 지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하여금 한반도의 내에서 반일공작을 추진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1953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