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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5년 10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을미사변(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을 다시 본다’ 대청 차관을 둘러싼 ‘금융전쟁’에 영국, 독일, 러시 아, 프랑스의 은행들이 참전하였다. 은행들에게 대 청 차관은 단순한 자금 대출이 아니라, 청국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권 획득의 토대였다. 따 라서 대청 차관을 둘러싼 금융전쟁에서 러시아가 유 리한 고지에 서게 된 배경에는 청국을 위해 삼국간 섭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부족한 러시아 주도의 대청 차관은 간섭 3 국의 은행들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이 합리적으로 보 였다. 그러나 대청 차관단에서 독일은 배제되었다. 비테의 대리인이자 러시아국제상업은행장 로트슈테 인(A.Rothstein)이 파리의 로스차일드와 차관 협의 를 마친 후 베를린을 거치지 않고 귀국했기 때문이 다. 독일정부는 이 사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로 트슈테인이 프랑스 은행단과 1,600만 파운드 대청 차관 제공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한 독일은 러 · 불 컨소시엄을 저지하기로 했다. 독일 외상 비버슈타인(Bieberstein)은 영국에 관심 을 돌렸다. 그리고 국제 금융 허브인 베를린에서 차 관 발행을 위한 기채(起債)를 허용하지 않겠다 고 통 보했다. 영국 역시 동일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 했다. 그 결과, 대청 차관을 둘러싸고 유럽은 러 · 불 과 영 · 독의 양대 진영으로 분리됨으로써 사실상 러 시아 주도의 삼국간섭은 와해되고 말았다. 주독 일 본 공사 아오키 슈조[ 青 木周 蔵 ]가 7월 5일 일본 정 부에 “동아시아에서 3국 연합이 화장 처리만을 남겨 놓은 시신 정도의 위력만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 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고종의 인아거일책(引俄拒日策)과 을미사변 삼국간섭의 위력이 사실상 소멸하자 일본은 청일 전쟁을 통해 조선을 ‘보호국화’하려는 계획을 재추 진하였다. 그 배경에는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삼국간 섭의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더불어 러시아 태 평양함대 사령관 알렉세예프(E.Alexeev) 제독이 서 울을 방문하여 고종(高宗)을 알현한 사실이 있었다. 삼국간섭의 위력이 바닥에 떨어졌을 무렵, 러시아 청일전쟁 이후 청일간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 조약(1895.4.17) 체결 장면을 그린 그림(나무위키 제공) 서울을 방문하여 고종을 알현했던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관 알렉세 예프(Alexeev) 제독(1843 ~1917) 주조선 러시아공사 이바노비치 베 베르와 그의 부인(1878년, 출처 『러시아외교관 베베르와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