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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5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②’ 을 계획하고, 선언서·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학생 동원 등 역할을 분담하였다. 하지만 준비기간이 촉 박해 거사 일을 3월 10일 작은 장날로 연기하고, 당 일 오후 2시 선언서 배포를 시작으로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무력진압으로 주 동자 등 시위 참가자 100여 명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만세시위 소식과 고종(高宗) 독살설,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담은 『조선 독립 광주신문』 제1·2호가 발간 배포되는 등 저항의 분위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마침내 3월 13일과 18일 광주 큰장날을 이용한 시위와 4월 15일 숭일학 교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기독교계 주도의 만세시위는 3월 15일 장 성 삼서면과 4월 8일 목포 양동교회 교인과 정명학 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로 이어졌다. (2) 유생층이 주도한 경우 유생층이 주도한 만세시위는 순천 낙안을 비롯해 광양, 보성, 장성 현지, 구례 등이 대표적이다. 구례 는 3월 23일 구례읍 장날 유생 박정현이, 3월 27일 에는 광양의 유생 정성연이 단독 만세시위를, 4월 2 일에는 보성에서 서당 생도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 기도 하였다. 또한 4월 3일과 4일 장성 모현리에서 유생들이 ‘화전놀이’를 가장해 회합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4월 7일 박항래가 순천읍내 연자루 에서 단독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특히 순천 낙안 만세시위는 주목할만 하다. 이곳 은 전통적으로 죽산 안씨 등의 세거지로 유림적 기 반이 강한 곳으로, 한말 최익현 의병진에 적극 가담 하는 등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이 어느 곳보다 강했 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이곳 유림들은 3월 초부터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는 등 만세시위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던 중 4월 2일 안호영 등은 만세시위 를 실행하기 위해 구국결사단체인 ‘도란사’를 조직 하고 4월 3일에는 행동대격인 ‘이팔사’를 33인으로 3 · 1운동 직후 체포된 최흥종의 서대무형무소 수감시 모습(국사편찬 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광주3 · 1만세운동 동상’(광주수피아여고 구내, 국 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