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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채는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외(西門外) 장날을 이용하여 이만집(李萬集)·김태련(金兌鍊)·권의윤(權義允)·김영서(金永瑞)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당시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 교사인 그는 경상도 독립만세운동의 연락책임자로 2월 24일 대에서 내려온 이갑성(李甲成)과 제일교회에서 만나, 국내외의 정세를 전해 듣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어 그는 이만집·김태련·김영서·권의윤·이상백(李相柏)·정재순(鄭在淳)·정광순(鄭光淳)·최상원(崔相元)·최경학(崔敬學) 등과 만나, 서문외 장날인 3월 8일 오후 3시를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각자 주민과 학생의 동원을 책임분담 하였는데, 그는 계성중학교 학생의 동원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