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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의 애국지사 윤동욱 윤동욱(尹東旭, 1891~1968)의 본관은 파평, 호는 학은으로 1891년(고종 28)에 이 곳 산현리에서 출생하였다. 29세가 되던 1919년 3월 30일, 1,000여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전개되었던 시흥군 수암면 비석거리의 3.1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시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 그는 경찰 주재소, 공립보통학교, 면사무소 등이 있었던 읍내로 행진하며,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공립보통학교 앞에 이르러 시위를 진압하던 조선인 순사 임건호에게 "당신도 조선인이니 만세를 부르라"고 종용하였으며, 시위대가 수암면사무소 앞에 도달하자 태극기를 세우고 군중의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또한 헌병대의 강제 진압으로 인해 격분한 시위대가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불태우려 하자, 그는 "독립이 되고 나면 이는 모두 우리의 국유재산이 되니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며 이를 진정시켰다. 윤동욱은 이 날의 만세운동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송치되었고 1919년 5월, 경성법원으로부터 8개월의 징역형을 언도받았으며, 결국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윤동욱이 수암면 만세운동에서 일제에 의해 임명된 관리가 직접 만세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 것은 이 날의 시위에 대한 간접적인 승인을 도모함과 동시에 만세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며, 장차 국유재산이 될 공공건물을 보호하려 했던 행동 역시 침착함과 냉철함을 바탕으로 한 독립에 대한 굳은 의지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윤동욱은 1923년 이후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후에는 5년간 산현리 구장을 역임, 지역 재건에 힘쓰다가 1968년 77세의 일기로 산현리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1996년 8월 15일, 조국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다. 묘소는 현 위치(시흥시 산현동 산52-3)의 파평 윤씨 묘역 중 상단 좌측에 위치하며, 2010년 3월, 시흥문화원에서 추모의 뜻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