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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을미사변의 국제관계사 45 와 한반도로 경제적 침투를 구상했던 그의 산업화 정책이 있었다. 그는 유라시아 국가인 러시아의 지 리적 장점을 최대화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 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 부설을 주도했다. 유럽을 러 시아 근대화를 위한 자본의 원천으로 삼고, 아시아 를 러시아 상품시장으로 확보하고자 했던 그의 산업 화 정책은 일본의 청일전쟁 도발로 일대 위기에 봉 착했다. 비테는 시베리아철도가 일본이 청일전쟁을 도발 한 원인이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비테의 견해에 따르면, 유럽 열강과 일본은 머지않은 장래에 청국 이 분할될 것으로 예견하고, 이 경우 시베리아철도 가 러시아에게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이 기(利器)로 간주하여 이를 경계한다고 판단했다. 이 는 승전국 일본이 대청(對淸) 강화조건으로 요동반도 할양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비테가 대일(對日) 강경책을 주도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청일전쟁은 개전에서 을미사변까지 3단계의 전 쟁 양상이 나타난다. 1단계는 한반도 풍도해전 (1894.7.25)으로 시작되어 중국 산동반도의 웨 이하 이웨이(威海衛)전투(1895.1.20~2.12)로 막을 내린 청일 양국의 군사 전쟁이다. 2단계는 승전국 일본의 강화조건에 요동반도 할양이 포함되자 일본을 겨냥 한 러시아 주도의 3국 간섭(4.23)으로 표출된 외교 전쟁 양상이다. 마지막 3단계는 패전국 청국의 대일 배상금 지급과 관련하여 대청 차관을 둘러싼 제국주 의 열강의 금융전쟁이 그에 해당한다. 이에 청일전 쟁 양상은 군사, 외교 그리고 금융 전쟁으로 진화하 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을미사변은 대청 차관 제 공을 둘러싼 금융전쟁에서 독일이 배제됨으로써 간 섭 3국의 결속력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왜 대청차관협정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은행 신디케이트가 차관을 제공하고 독일은 배제되 었을까? 패전국 청은 대일 배상금 2억 냥을 6년간 지 불하고 나아가 요동반도 반환에 따른 보상금으로 3 천만 냥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청국이 자 국 예산의 3년 치에 해당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 는 방법은 관세를 담보로 한 차관 도입이었다. 이에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 러시아 재무장관 비테(이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