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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중국 국민정부와 조선의용대 45 가 없이 몇 명씩 나누어져 후난(湖南), 후베이(湖北), 장시(江西), 안후이성(安 徽省) 등 넓은 지역에 걸쳐 있던 중국 군대의 최전선에 배치되어 적(일본군) 에게 구호를 외치거나 전단 살포, 적 후방에서의 정보 수집, 대민 선전 등 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이런 과 정에서 일부 대원들이 직접 전투에 참 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조선의용대는 비무장의 대적선전(對 敵宣傳) 임무를 맡고 있던 특수부대였 다. 조선의용대 내부에서나 왕지시엔 같은 중국 지 도위원조차 대원들에 대한 무장화와 단독 군대 조직 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러나 비무장 선전 특수부대라고 해서 조선의용 대의 역할이 적었다거나 희생이 적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조선의용대통신』 뿐만 아니라 『중앙일 보(中央日報)』를 비롯한 중국 측 언론에서도 그 역할 이나 성과, 희생에 대하여 대서특필하고 있고 동시 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측에서 조선의 용대의 무장화에 반대한 것은, 훗날 한국광복군 성 립 이후에 그 활동을 철저하게 통제하기 위한 장치 로 「한국광복군행동 9개준승(準繩)」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한국 임시정부 측의 강력한 반대를 불러일으 켰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외국인 군대인 조선의용대 를 중국 군대의 지휘와 통솔 아래 완전하게 묶어두 려는 중국 측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 실은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공동항일”에 나섰던 조 선의용대 측에서 보자면 부당하고 받아들이기 어려 운 일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항일전쟁 시기의 한중 연대나 ‘한중공동항전’을 중국 측의 한국독립운동 ‘지원’의 결과로만 보기는 어렵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사학과에서 중국근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현대정치사 및 한중관계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신라대학교 사학과, 부산대학교 한 국 민족문제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장개석(蔣介石) 연구』(일조각, 1995), 『한국에서 보는 중화민국사(從韓國看的中華民國史)』(중문, 2004), 『쑨원 (孫 文)과 한국』(한울, 2007), 『중국과 아시아』(한울, 2016), 『20세기 한중관계사 연구』(일조각, 2024) 등이 있다. 필자 배경한 조선의용대 휘장과 대원(황민, 김승곤[1915~2008]의 가명) 신분증(김태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