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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광주 · 전남지방 3 · 1운동의 전개와 특징 45 광주·전남지방 만세시위를 주도세 력 유형별로 구분하면 크게 다섯 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즉, ① 기 독교계(광주, 목포, 강진, 장성, 고 흥 등), ② 유생층(순천, 광양, 구례  등), ③ 청년·학생층(영암읍, 곡성,  영광, 함평, 해남, 여수 등), ④ 천도 교(장흥 등), ⑤ 행정기관 관리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담양,  영암 구림 등)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같은 지역이라 할 지라도 시기에 따라 혼재되어 나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전남  3·1운동 역시 각계각층이 참여한  거족적 민족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이후 1929년 광주학생 독립운동 등 이 지역 민족운동의 자 양분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던 것으 로 평가된다. 광주 · 전남지방 3 · 1운동의 유형 3·1운동은 각계각층이 참여한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초순부터 지방으로 들불처 럼 확산되어 대중화 단계로 접어든다. 광주·전남의 만세시위 역시 3월 10일 광주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인근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시기적으 로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운동의 고조기를 거쳐 4월 말부터 소 강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 시기 동안 전남지방 23개 부(府)·군(郡) 전 지 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전체 시위군중은 2,863명으로 확인되 나, 실제 시위 참여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전남지방 만세시위를 주도세력 유형별로 구분하면 크게 다섯 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즉, ① 기독교계(광주, 목포, 강진, 장성, 고흥 등), ② 유생층(순천, 광양, 구례 등), ③ 청년·학생층(영암읍, 곡성, 영광, 함평, 해남, 여수 등), ④ 천도교(장흥 등), ⑤ 행정기관 관리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담양, 영암 구림 등)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같은 지역이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광주·전남 3·1운동의 양상 (1) 기독교 세력이 주도한 경우 기독교계 주도로 만세시위가 전개된 지역은 광주를 비롯해 목포, 강 진, 장성, 고흥 등지다. 특히, 광주는 3월 10일 기독교계 목회자와 신도, 숭일, 수피아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 다. 그 과정을 좀 더 살펴보자. 광주는 2월 말경 일본 동경(東京) 유학생으로부터 ‘조선청년독립단’ 명의의 2·8독립선언서가 전달되는 등 국내외 정세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다. 3월 초 김필수(목사), 김철(양림교회 신도), 최흥종(기독교인) 등 이 서울 만세시위에 참가하던 중 최흥종이 체포되자, 김필수 등은 3월 5일 급히 광주로 내려와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숭일학교, 수 피아학교 교사 등과 회합하고 3월 8일 광주 큰장날을 이용해 거사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