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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경북지역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본군의 탄압 45 월 30일까지 두 달에 걸쳐 전라남도와 그 외곽지대 에서 활동하던 의병에 대한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이 다. 이 기간에 경북지역에서도 태백산과 소백산, 그 리고 일월산 일대에서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으 로 의병들은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경북지역에서 전개된 탄압 작전은 전라도에서 실시된 남한대토벌 작전의 요령에 준하여 전개되었다. 일본군은 경북 북부지역에서 게릴라적인 유격전 을 벌이고 있던 김상태 · 정경태 · 최성천 · 윤국범 등의 의병을 진압할 목적으로 1910년 11월부터 12월 20 일에 걸쳐 ‘대토벌작전’을 벌였다. 조선 파견 보병 제 1연대 3대대 장교 이하 399명과 같은 지구 내에 있 는 헌병 · 경찰 145명을 동원하는 연합토벌작전이었 다. 그 결과 자수 5명, 검거 75명, 사살 4명, 그리고 윤국범과 김상태의 참모 문성조가 체포되었다. 일본군의 끈질긴 토벌작전으로 각처에서 유격전 을 전개하며 항전하고 있던 의병들의 활동 기반도 점차 무너져갔다. 체포를 면했던 김상태 · 정경태 · 최 성천 등도 끈질기게 이어진 토벌작전을 피하지 못하 고 차례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그 외 다수 의 병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총살 · 순국하였고, 장기간의 옥 고를 치러야만 했다. ➌ 일본군의 의병 탄압은 가혹하고 무자비하였다 후기 의병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경북지역 의병장 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사형되었고, 투옥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그리고 일부는 은신하거나 국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후기 의병에 참여했던 병사들도 일본군의 포위 공 격을 피하지 못하고 무수히 사살되었다. 또 다수의 의병이 체포되거나 귀순했지만, 일본군은 도주를 시 도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총살하였다. 심지어 봉화 서벽전투에서 일본군은 참살한 의병의 몸과 목을 분 리하여 목은 서벽리 입구의 수목에 매달았다. 산남 의진의 마지막 전투였던 청송지역 유격대의 고와실 전투에서 수많은 의병은 양 손발이 묶인 채 백석탄 의 물속 바위에서 총살되었다. 일본군의 의병 탄압 은 이처럼 가혹하고 무자비하였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독립운동사 전공으로 대경대학교 교수, 경상북도·대구시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국 가 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독립기념관, 2008), 『경북독립운동사』 (경상북도, 2012), 『희고 흰 저  천 길 물속에 김도현』(독립기념관, 2012), 『목숨바쳐 나라를 사랑한 선비 왕산 허위』(경북독립운동기념관, 2014), 『한계 이승희의 생애와 독립운동』(성주문화원, 201 8),  『근대 대구의 애국계몽운동』(선인, 2021) 등이 있다. 필자 권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