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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함안 3 · 1운동의 전개양상과 특징 45 경남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일찍부터 침략의 거점이 됐다. 그 과 정에서 함안일대에는 일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드높아지고, 3 · 1운 동기에는 만세시위가 격렬하게 전 개됐다. 함안 3 · 1운동의 내용과 방 식을 보면 만장(輓章)과 태극기를  앞세운 만세를 고창하는 시위를 기 본으로, 전화선 절단, 주재소, 면사 무소, 등기소, 우체국, 공립보통학교  등을 몽둥이나 괭이(땅을 파거나 흙 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등이나 투 석 등으로 공격했다. 게다가 군수나  면장을 위협하여 만세를 강요하기 도 하고, 일본인을 대상으로 만세운 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함안의 3 · 1운동은 반제국 주의투쟁인 항일독립운동임과 동시 에 반자본주의적 투쟁의 성격까지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경남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일찍부터 침략의 거점이 됐다. 1910년대 말 이곳에 이주한 일본인이 약 6만여 명에 달했다. 경기도 다 음으로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들은 부산과 마산 등의 개항 장을 중심으로 토지와 어장, 그리고 상업 전반에 걸쳐 경제적 침탈을 확 대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함안일대에는 일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이 드 높아지고, 3 · 1운동기에는 만세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됐다. 함안과 합천 진주와 같은 서부 내륙지역에서는 재지(在地)세력이 인 근지역과 연대하여 대규모 폭력시위가 전개된 반면, 여타 지역에서는 학생, 교사가 중심이 된 평화시위가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이 나타난 이유는 일제의 침투 크기와 재지세력의 역량 결집 정도가 관련 이 있다. 또한 경남에서는 범어사, 해인사, 표충사 등 불교세력이나 유 림세력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경남의 3 · 1운동은 3월 3일 부산과 마산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서울의 시위 소식이 전해지면서 계획됐다. 이곳의 3 · 1운동은 3월 중순 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다른 지역보다 훨씬 격렬했다. 함안, 하 동, 합천, 창원, 진주, 김해 등지에서는 10회 이상의 만세시위가 연속적 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경남에서 발생한 시 위 회수는 경기도와 황해도 다음으로 101회였으며, 사상자는 평남, 평 북, 경기 다음으로 186명이었다. 함안 3 · 1운동의 전개와 피해상황 함안은 북쪽으로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창녕, 의령군과 접하고, 동남쪽으로 창원, 남쪽으로 진 주, 서쪽으로 의령군에 접한다. 함안의 3 · 1운동은 인산에 참가한 인사들의 귀향으로 서울의 만세운 동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준비됐다. 이곳의 3 · 1 운동은 계획의 치밀성, 투쟁의 연속성과 치열성을 지닌 전군민적 만세운동이었다. 3월 9일 칠북 연개장터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함안 3 · 1운동 발생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