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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국제법적 관점에서 본 카이로선언과 한국 독립문제 45 카이로 선언과 한국 영토주권의 회복 한국의 영토주권 회복과 관련하여 카이로 선언에 는 일본으로부터 반환 및 일본이 축출되어야 지역으 로 3개의 범주를 설정하고 있다. 첫째,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개시 이후에 있 어 일본이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에 있어서의 모 든 도서, 둘째,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만주·타 이완·펑후제도(澎湖諸島) 등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도 취(盜取)한 일체의 지역, 셋째, 일본이 폭력 및 탐욕에 의하여 약취(略取)한 다른 일체의 지역 등이다. 카이로 선언상 한국의 영토는 세 번째 범주인 “일 본이 폭력 및 탐욕에 의하여 약취(略取)한 다른 일체 의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영유권과 관련하여, 첫째, 일본국제법학계의 히로세 요시오(広瀬善男)의 국제법사관이 제기하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 전인 1905년 일본의 독도 침탈과 을사늑약 강제는 모두 국제법상 합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침탈 당시 국제법도 침략적 국가실행과 유착된 일본형 법실증주의(法實證主義)가 아닌 보편적 국제 규범에 입각한 규범성이 제고되고 있는 시점이다. 또 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은 1963년 UN의 조약 법협약 법전화 과정에서 1935년 ‘하버드법대 초안’의 국가대표에 대한 강박에 따른 무효조약의 전형(典型) 으로 제시된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 청일전쟁 후 청일간에 체결된 1895년 시모 노세키조약(下關條約)에서 일본에 할양된 랴오둥(遼 東)반도, 타이완, 펑후제도와 관련하여, 1943년 카이 로 선언에서는 도취(盜取)하여 반환해야 하는 지역으 로,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제2조 (b)항에서 는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역으로 명시하고 있는 점 에서, 청일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과 영토팽창의 정 당성을 부정하는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셋 째, 한국은 제1차 세계대전 및 청일전쟁이라는 시간 적 범주에 더하여 ‘폭력과 탐욕(violence and greed)’ 이라는 영토 약탈의 본질적 개념에 입각하여, 샌프 란시스코강화조약 제2조 (a)항 상의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기점으로서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인 1905년 독도침탈을 비롯 하여 일본이 약취한 한국 영토가 있다면 모두 독립 된 한국에 반환하여야 함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카이로 선언과 한국 독립의 시기 카이로 선언은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 여 ‘적절한 과정’을 거쳐 한국을 자유롭게 독립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독립시기와 관련하 여 홉킨스 초안에서는 일제 패망과 더불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의 독립을 의미했으나, 다국적 신탁통 치안을 구상하고 있던 루즈벨트에 의해 ‘적절한 시 기’로 교정되었다. 처칠 수상은 이러한 미국안에 대 해 ‘적절한 과정을 거쳐’로 수정하였는데, 자국의 인 도 식민지 및 홍콩 문제들을 감안하여 식민지 독립 및 독립시기에 대해 가급적 모호하고 불명확한 용어 사용을 통한 소극적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한국의 독립시기와 관련하여 ‘적절한 과정을 거쳐(in due course)’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독 립의 유예를 의미하며, 과정적으로는 신탁통치라는 절차를 거친 뒤에야 한국의 독립이 달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루즈벨트의 신탁통치 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식민지에서 독립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