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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향 민 의 애 환과 이 산 가족 상봉 이 야 기 45 “자식 놔두고 돌아서는 어버이는 발자국마다 피가 괸다고 하지 않 습디까.”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의 노어부 황순철씨와 강현춘씨 는 고향생각에 깊이 젖어든다. 이마의 짙은 주름살에 피맺힌 회향 의 소망이 … 이야기 2. 아바이마을 김형준 할아버지 “난 아이가 둘이었는데, 큰 아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 댕기는 거 보고 난 혼자 피난 나왔지. 지금은 어찌됐는지 몰라. 죽었는지 살았 는지....” 속초신문 1992년 3월 23일자 신문에 실린 실향민 구술 이야 기. 1914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1.4후퇴 때 피난 나온 김 형준 할아버지는 취재 당시 속초시 청호동 4통 1반에 살고 있었 다. 동해의 해변가라 공기는 좋았지, 마을 뒤로는 어인봉이 있구, 앞쪽 으로는 냇가도 있어. 난 1.4후퇴 때 피난 나와 가지구 경상북도 척산에 있다가 아군 따 라 속초에 들어왔단 말이야. 피난 나온 지 4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자는 우리네 고향이라는 건 아물아물할 뿐이지. 함경남도 북청 우 리 부락엔 1백25여 호가 살았는데, 학교를 가려면 5마장을 걸어가야 했지. 난 학교도 못 댕겼어. 아주 어렸을 적에 서당을 한 1년간 댕기 다만 게 전부야. (생략) 먹고 살려다보니, 난 어린 시절부터 배를 탔어. 그때 우린 주로 신 포나 신창 앞바닷가로 나가 고기를 잡았는데, 특히 신포 앞 바닷가 마 양도 근처에 명태가 많았지. 그곳은 군인들이 말을 키웠다 해서 붙여 진 이름이야. 그리고 우리 부락 앞바다에두 섬이 하나 있었는데, 꽤 유명했지. 그걸 우린 각시바우라 했는데,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각시바우에 노를 저어가서 섭을 뜯어 죽도 쑤어먹고 놀았지. 그 시절에 재미있게 논다는 건 노인들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