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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만세추념비 (己未獨立萬世 追念碑) 슬기로운 배달민족의 푸른 얼이 타오르는 언덕에 우람찬 이 빗돌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이 고장에서 태어나신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민족정기를 새겨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지난 1910년에 나라 잃은 겨레는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에서 끝없는 슬픔에 쌓여 기아에 허덕이며 생존권마저도 박탈당하는 처참한 생활 속에서도 독립의 그날을 위해 기회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1919년 4월 2일 오미장터에서 이성교(李聖敎), 임백규(林白圭), 임경순(任璟淳), 김달년(金達年), 김동식(金東植), 송인식(宋寅植), 박병철(朴炳喆), 박제성(朴濟成), 이철우(李喆雨), 류해길(柳海吉), 이용학(李容學), 민병철(閔丙哲), 박영록(朴永祿) 님 등이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독립선언문을 외치며 독립만세시위를 하였다. 그때 시위를 주도하신 애국투사들은 모진 옥고와 수난을 당하였고, 기록에는 없으나 수많은 애국투사들이 받은 핍박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 핏빛으로 물들여진 36년 치욕의 역사를 후세에는 교훈으로 삼게 하고 8·15광복의 벅찬 감격과 함께 마땅히 선열들의 우국충정을 기리어 천추에 그 뜻을 전했어야 함에도 이를 이제야 작은 빗돌에 임들의 공적을 새겨 전하게 됨을 죄스럽게 느낄 따름이다. 이제 기미년 당시의 의거를 되새기면서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기미년 3·1독립만세 추념비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일제의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항쟁하였던 이 고장 애국지사들의 거룩한 구국정신을 높이 선양함은 물론 후세들에게 길이 계승코자 1993년 3월 1일 높이 3.5m의 이 추념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