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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24년 6월 Special Theme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 특집 ‘대한제국기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의병 탄압’  학교를 공격하여 교사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최성천의 부장 윤국범은 김상태 · 최성 천 등과 함께 일본인과 친 일분자를 처단하는 등의 활 동을 하다가 1911년 1월 체 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교 수 · 순국하였다. 강원도 춘천 출신의 정경 태는 1908년 6월 이후 김 상태와 함께 영주 · 순흥 · 풍 기 · 영월 등지에서 활동하며 소규모 의병부대를 지휘했 다. 김상태가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어 단식 · 옥사 한 뒤, 정경태도 곧 체포되어 1911년 8월 10일 교수 형을 받고 사형되었다. 산남의진을 이끌던 제2대 대장 정환직이 체포되 어 순국한 뒤, 제3대 대장 최세윤은 서울진공을 포기 하고 지구전을 계획하였다. 그는 본부인 남동대산을 중심으로 경주 · 울산 · 흥해 · 영일 등지에서 1908년 2 월부터 8월까지 불굴의 항전을 이어갔다. 영릉의진의 경우, 신돌석이 타살 · 순국한 뒤, 그 휘 하 잔류의병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의 부 하 정문칠이 영해 등지에서 신돌석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활동한 흔적이 있고, 부하 이수목 · 김종달 · 서고 락 등이 체포되어 총살 · 순국했다는 기록도 있다. ➋ 소위 ‘남한대토벌작전’, 경북지역에서도 전개 되다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은 1909년 9월 1일부터 10 산남의진의 1907년 10월 7일 전투 현장인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필자 촬영) 봉화 춘양면 서벽초등학교 앞에 세워진 항일의거기념비(봉 화군 제공). 1908년 5월 17일 이강년·민긍호 의병부대가 춘 양면 서벽리로 들어오는 일본군 영천수비대를 포위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한 의병과 그 전투를 기리기 위해 1984년에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