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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는 서기 1896년 7월 19일 김포군 통진면 도사리 640번지에서 부 전창근옹과 모 하씨의 4남 3녀중 막내로 출생하였으며 21세에 누산리 원산 거주 홍음천과 결혼 거처를 누산리 처가로 옮겨 농사와 목수일로 보내시다가 일제에 맞서 민족자존을 지키기 위해 금주, 금연, 절미운동을 펼치며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시였습니다. 이후 일제의 식민지배에 항거하기위해 절치부심하던중 당시 거족적으로 전개되던 3.1독립만세운동 대열에 참여하고 귀향한 보성학생 박충서를 필두로 박승각, 박승만, 안성환, 오인환, 정억만 등 7인이 모의 격문과 경고문등 수십통 을 작성하여 양촌면과 월곶면 군하리 일대에 비밀 배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오라니장터에 모인 수백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피체되셨습니다. 공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미결수 3개월, 징역3개월형에 태형 90대를 맞아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는 고통을 받았으며, 당시의 후유증으로 평생을 피폐하게 사시면서도 4남 1녀의 자식들에게는 애국, 애족하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하셨습니다. 공은 이후에도 남다른 애국활동을 하시다가 1963년 5월 21일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정부에서는 조국 자주독립운동과 국가발전에 헌신하신 공을 기리기 위해 1992년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을 수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