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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희생자 북촌리 원혼 위령비 건수기. 서기 1948냔 음력 12월 19일 새벽 마을 어귀 고갯길에서 무장대가 군차량을 기습하여 군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이 들이닥쳐 온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교 마당에 집결시켜 학살을 자행하다가 인근 밭으로 4.50명씩 몰고가 부차별 사격으로 3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곳 너븐숭이는 학살의 현장이다. 그 이튿날(12월 20일) 살아남은 사람들은 함덕리로 소개되어 갔으나 또 거기에서 수십 명이 희생되었다. 이보다 앞서 음력 11월 16일에는 무장대의 습격에 대비하여 밤낮으로 보초서던 민보단원 23명이 마을 동쪽 낸시빌레에서 학살당하였다. 군경이 탄압을 피하여 가꾸운 야산 숲속과 동굴에 숨어있던 상당수의 주민들은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전단을 보고 손들고 내려왔다가 잔혹한 고문으로 죄가 씌어져 정뜨르비행장에서 집단 처형당하거나 바다에 던져져 수장되고 혹은 육지형무소로 보내어져 행방불명이 되었다. 원통한 죽음들이었건만 울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말문에 족쇄가 채워진 지 어언 60년이 흘렀다. 민주화운동의 성공으로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대가 종식됨에 따라 4.3진상규명요구의 함성이 드높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2000년 1월 12일 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하여 공권력의 잘못을 사과함으로써 마침내 4.3사건의 진실이 역사의 조명을 받게되었다. 1993년 마을 원로회에서는 4.3진실이 유영되라는 확신을 갖고 피해 조사를 단행 439명의 희생자와 재산피해 상황을 조사하였고 유족회에서는 수년 전부터 합동위령제를 봉행해 오고있더. 이제 우리는 모든 이의 뜻을 모아 이곳 너븐숭이에 위령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련함으로써 억울하게 가신 영령들을 위무하고 이 자리를 평회시대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기념사업은 정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서기 20007년 음력 1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