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page

Special Theme • 안성지역 3 · 1운동과 특징 43 사가 사람들이 만세를 부르는 것을 체포하여서 나는 그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만세를 불렀”다 고 말했다. 그들은 ‘독립’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 ‘어쩐지’ ‘독립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 더 좋아서’ ‘사람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수많은 민중 이 일제 군경의 총탄에 사망하거나 부상했고 만세운 동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엄혹한 검거 선풍에 시 달렸다. ‘독립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 한 오늘날, 적어도 3월에는 백 년 전에 ‘독립’이라는 말이 어째서 그토록 수많은 민중의 마음을 흔들 었는 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데이터베이 스’ ; 허영란, 「 3 · 1운동의 지역성과 집단적 주체의 형 성 」 , 『1919년 3월 1일에 묻다』, 성균관대학교출판 부, 2009 ; 허영란, 「 삼일운동의 네트워크와 조직, 다 원적 연대」 , 『사학연구』 132, 2018 ; 허영란, 「 만세 시위의 다원적 의미와 지속되는 지역공동체-안성군 3.1운동의 새로운 이해 」 , 『역사와현실』 113, 2019를 토대로 작성했음). 현재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근현대 시기의 사회사, 지역사, 구술사를 전공했고, 최근의 관심 주제는 트랜스 로컬(超지역)역사와 공공역 사이다. 대표저서로는 『일제시기 장시(場市) 연구』, 『장생포 이야기』, 『울산항의 역사』(공저), 『남양(南洋)과 식민주의』 등이 있다.  필자 허영란 2023년 4월 1일 안성3 · 1운동기념관에서 제104주년 안성4 · 1만세항쟁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안성시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