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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일 만에 또 고령을 찾았다. 경북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95-1 마을회관 부근 곽걸 선생 추모비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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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막리(月幕里) 유래 뒷산의 모양이 달과 같이 생겼고, 밤이면 달빛에 비친 모양이 마치 차일(幕)을 친 것 같이 보여 달막(다르막)으로 불리다가 월막(幕)이 되었다. 월막은 국밭(菊田), 산막(山(幕)과 함께 세 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있다. 다르막 골짜기에 고려조 한림학사 이인로(李仁老)가 한림대의 축대를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본래 월막은 고곡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산막, 국밭과 함께 병합되어 임천면 소재가 되었다가 1930년에 임천면과 쌍동면의 통합으로 쌍림면에 편입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월막은 1700년경 송림에서 수해를 당한 후 이주한 현풍 곽씨, 예곡(禮谷) 곽율(郭起) 선생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국밭도 1700년 이후 현풍 곽씨 태허정(太虛亭) 곽홍지(郭弘址) 선생의 후손들이 귀원에서 옮겨와 살면서 들에 핀 국화를 좋아해 집안과 마을 곳곳에 심어 국화향이 진동하는 것을 보고 국화밭으로 불리다가 국밭이 되었다. 산막골은 곡부(曲阜) 공(孔)씨가 산에 움막을 짓고 사는 것을 보고 산막이라 불리었다는 설과 마을 개척 당시 노송(老松)에 학(鶴) 세 마리가 노닌다하여 삼학골(三鶴谷)이라는 설이 있다. 원막에는 임진왜란 당시 초계에서 창의(倡義)하시고 순국하신 예곡(禮谷)선생을 기리는 모례정(慕禮亭)과 그 후손 경훤당(景喧堂) 곽치도(郭致道) 공(公)의 재사(齋舍)와 예곡(禮谷) 선생의 종택(宗宅)이 있다. 국밭에는 태허정(太虛亭) 곽홍지(郭弘址)선생을 기리는 월암사(月農祠)가 있었으나 훼철되고 종산재(鐘山齋)가 세워져 있다. 2008년에 새로운 꿈 새로운 농촌만들기 사업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동네 입구에 소공원과 게이트볼장, 월영루(月影樓), 망월정(望月亭) 등을 지어 마을 경관을 새롭게 하였다. 2010년 5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