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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리아 선생은 황해도 송화 사람이다. 조실부모하고 서울로 올라와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다가 2 8독립선언문 수십 장을 가지고 귀국하여, 1919년 3·1독립운동 준비에 참여하여 황해도 지역에 동지 규합을 담당하였다. 그녀는 3 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즉시 정신여학교 기숙사에서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동년 8월에 면소 석방되었다. 출옥 후 정신여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의 출옥 환영연에서 그녀는 동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상해에서 조직된 대한적십자회 대한지부를 결성하고 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로 보내고, 독립선언문을 배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19년 11월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6개월 여의 예심 중 일경의 모진 고문으로 중병에 걸려 대구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1920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고등법원에 상고하니 원판결을 파기하고 1921년 3월 경성복심법원의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때 병으로 해변에서 휴양하도록 승인 받은 기회를 이용하여 그녀는 상해로 탈출할 수 있었다. 상해에서 수개월의 치료 끝에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남경 금릉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23년 6월에는 국민대표회의에 대한애국부인회 대표로 참가하여 성명서 발표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가 휴양하다가 미조리주의 팍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대학 도서실에 근무하였다. 1935년에 귀국하여 원산의 신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4년 고문의 여독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녀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