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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옥(姜性玉)는 1937년 7월 일제는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확대시켜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직후 일본군 ‘위안’을 위한 여성동원 정책이 결정됐다. 1938년에 들어서자 일본군 ‘위안부’정책이 실시됐다. 이후 한국에서도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되기 시작했다. 1938년 4월 9일 오후 6시경 강성옥은 양산군(梁山郡) 원동면(院洞面) 영포리(泳浦里)의 조선지(朝鮮紙) 제조공장에서 장봉학(張鳳鶴)에게 “일제가 중일전쟁에 출전하는 일본군을 ‘위안’하기 위해 16세에서 20세까지 처녀와 16세 이상 30세까지 과부를 강제적으로 징집해 전쟁터로 보낼 것이며, 강제징집된 여성은 전쟁터에서 낮에는 취사와 세탁 등의 일을 하고 밤에는 군인과 성적 관계를 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같은 날 밤 9시경 마을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부녀자를 둔 자는 빨리 조치해야 한다”며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강성옥은 1938년 5월 24일 일제의 일본군 ‘위안부’강제 징집에 대해 말한 사실이 발각돼 체포됐다. 6월 24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밀양지청(密陽支廳)에서 이른바 일제의 ‘육군형법(陸軍刑法) 제99조 위반’ 즉 군사에 관한 허구를 날조한다는 혐의로 금고 6월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부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