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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5년 9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중국 관내 항일무장조직 조선의용대의 재조명’ 국민당 조직부의 지원이다. 김원봉 측에 대한 지원 은 훗날 조선의용대의 성립에 기초를 제공하였고 김 구 측에 대한 지원은 이후 한국광복군의 성립에 기 초를 제공했다.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의 성립과 활동이 중국 내 한국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성과였 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용대의 성립과 활동을 이해하 는 한 가지 방편으로 조선의용대에 대한 중국 측, 곧 국민당정부(국민정부)의 정책이 어떠했던가를 중점 적으로 다뤄보았다. 조선의용대의 성립과정과 국민정부의 입장 김원봉이 주도하던 급진적 독립운동 단체, 조선의 열단은 1919년 11월 동북(만주)에서 만들어졌는데 일제의 요인 암살, 주요 기관 파괴, 무장 폭동 등을 주된 활동으로 삼고 있었다. 1931년 9 · 18사변 이후 중국동북이 일제의 지배 아래 들어 가자 동북에서의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 의열단은 활동무대를 양자강(揚子江) 일대의 화동(華東)으로 옮기면서 국 민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1925년 중국 국민혁명의 기반이라고 할 황포(黃埔 )군관학교 에 입교, 4기생으로 졸업한 김원봉은 군관학교 동창 들에게 접근하여 국민정부의 지원을 얻는 데에 성공 한다. 황포군관학교 교장 출신으로 당시 국민정부 주석 이었던 장제스는 군관학교 출신 청년장교들을 중심 으로 삼민주의역행사(三民主義力行社)라는 비밀 정 보조직을 만들고 강력한 군사정권을 만드는 데에 나 서고 있었는데, 김원봉은 역행사 휘하 민족운동위원 회를 통해 장제스에게 접근, 지원을 얻게 되었다. 뿐 중국 난징에 개설된 조선혁명간부학교 개학식에서 훈화(訓話)하는 김원봉 대장(출처: 『중국 전장에서의 조선의용대』)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 훈련지인 난징의 텐닝사(天寧寺) 터(독립기 념관 제공) 조선의용대 대장 김원봉(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