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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비(標識石碑)
홍동골 어린이 시체 암매장 장소
1951년 2월 11일(음력 1월 6일) 육군 11삳간 9연대 3대대장 한동석소령이 신원면 대현리, 와룡리, 중유리 주민 517명을 박산골짜기에 몰아넣고 기관총과 M1총등 각종 총기를 사용하여 학살을 해 놓고 마른나무를 덮고 기름을 뿌려 불로 태워서 은폐를 하고 감추려하였으나, 거창출신 신중목 국회의원의 국회폭로에 의해 국회와 내무부, 법무부, 국방부의 합동진상규명 조사단이 구성되자 이에 당황한 신성모 국방장관은 통비분자 위적행위자로 위장하기 위해 어린이 시체 100여구를 골라내어 이곳에서 좌측 50m 계곡으로 옮겨 암마장 한 곳이다.
그후 3년여 동안 현장접근을 못하게 하여 세월이 흐름속에 유골만 앙상한것을 1954년(음력 3월 2일)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여 박산묘역에 안장하였다.
이곳에 버려진 어린 넋들이시여 살아남은 유족들이 무심했나봅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표지석비에 나마 위안을 삼으시고 편히 잠드소서!
2010년 7월 경상남도의 후원을 받아 거창사건희생자 유족회에서 표지석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