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page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9년 경원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후 사회의 민주화, 대학의 민주화와 부정비리척결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 13대 대통령 선 거의 정치적 혼란과, 재단이 바뀌면서 기업화된 학원 운영, 이에 따른 파행 운영 으로 각종 비리와 부정, 특히 부정 입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불과 3달 전인 ’ 92년 11월이었다. 동지는 이러한 학원의 비정상적인 운영에 종지부를 찍고 진정 이 나라 백년지대계를 위한 학원으로 만들겠다는 의연한 자세로 당시 경원대학 교 제9대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추진위원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투쟁하였 다. 학내민주화와 더불어 ’92년 대선에서 공정선거 감시 캠페인을 하다가 경찰에 불법연행되어 고문수사를 받고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학내민주화운동과 관련하 여 정부의 시녀로 전락해버린 학교 당국으로부터 터무니없는 고소, 고발로 같이 활동하던 몇몇 간부들과 같이 성남 경찰서에 고발당하였다. 스승으로서 가져야할 일말의 양심도 저버리고 제자를 고소, 고발한 교수들에 게 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고 갈등하던 동지는 얼마 후 구속 영장도 없이 잠복 중 이던 성남 경찰서 소속 전담반 형사들과 10여명의 정사복 경찰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연행 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지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으나 당시 성남 경찰서장과 담 당 경찰관들은 직무를 남용하여 48시간 이상 구금하였고 가혹행위 등 고문수사 를 하여 정신적 충격을 받게 하였다. 재판에서 징역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받 고 수감 3개월만에 석방되었으나 ’93년 3월 부정입시관련 비상학생총회 중 교수, 직원에 의한 집단 구타를 당하여 육체적∙정식적으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였고, 결국 ’95년 12월 4일 온몸으 로 학내민주화를 위한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장현구 (당시26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경원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입학 1990년 카톨릭 학생회 회장, 제1대 공대 학생회 홍보부장 1991년 제2대 공대 학생회 제 1기 학원 자주화 추진위원장 1992년 11월 제9대 총학생회 제 1기 학원자주화 추진 위원장 대통령 공정선거감시단 활동 중 폭력 연행후 고문수사 당함 1993년 2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으로 출소 1993년 3월 부정입시관련 비상학생총회 중 교수, 직원에 의한 집단 구타당함 1993년 4월 이후 정신과 입원 치료(이후 5차례에 걸친 입, 퇴원 과정에서 3차례 자살 기도) 1995년 12월 4일 서울 송파동 송파 사거리에서 분신(전신 80%, 부분 3도 화상) 1995년 12월 14일 10일 간의 투병 끝에 운명 끝내살리라 |83| |8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