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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학은 충청남도 천안(天安)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홍일선(洪鎰善)·김교선(金敎善)·한동규(韓東奎)·이순구(李旬求)·조인원(趙仁元)·유관순(柳寬順) 등이, 갈전면(葛田面) 아우내( 川) 장날을 기하여 일으킨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 1시경 조인원이 태극기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워놓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아우내 장터에 모인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니 온 천지가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시위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헌병주재소로 접근하자 시위대의 위세에 놀란 일본 헌병이 기총을 난사하고, 또 천안에서 불러들인 일본 헌병과 수비대까지 무자비하게 총검을 휘둘러서,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명이 부상하였다. 그는 일군경에 체포되어 4월 27일 천안헌병대에서 태(笞) 60도를 맞고 빈사상태로 귀가하였으나, 그 장독(杖毒)으로 신음하다가 이듬해 7월 7일 향년 42세로 끝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