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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용 기미 3.1운동 약사
청웅면은 마한으로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군.현의 중심지였고 외침의 국난기마다 많은 층의 열사를 배출한 충,효의 고장이다. 경술국치로 국권상실의 비운속에 기미년 3월은 겨레가 궐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는 대운동이 전개되자 당시 구고면 선거리 감나무골에 일찍이 삼요정을 짓고 기미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중 두 분인 박준승 양한묵 선생 등 애국지사를 양성한 김영원 선생이 이 곳 구고리 양지마을에 삼화학교를 설립 초대교장으로 부임하여 민족교육의 선봉에 서자 그 제자들이 임실 각 지역 3.1독립운동 지도자가 되었으며 청웅면민들도 떨쳐 일어나섰으니 그 과정을 살펴보면 3월 2일 삼화학교 출신인 박성근 지사가 임실 천도교 교구에서 밤은 독립선언서를 장남 원엽씨가 면사무소 게시판에 붙여 불길을 올리자 3월 11일 100여 군중이 구고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른 후 3월 15일 현 기념공원 입구 느티나무 아래 수백 군중이 모여 본부를 설치하고 독립 선언식을 거행한 후 면내 각 마을을 순회 행진하며 독립만세 고창 3월 16일 17일 남산리, 옥전리를 왕래하며 야간 횃불 군중시위 계속 3월 21일 주민 대표 15명이 임실경찰서에 구속된 독립투사 석방을 요구하며 감방 농성 투쟁 1925년 봄 청웅면 농악단의 풍물놀이를 강제해산 시킨 왜경 사또를 결박하여 모랫재에 끌고 가 생매장을 위협하는 등 면민들의 저항운동은 광복 그날까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