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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리 마을앞 장승의 유래 본마을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피난 온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형성된 부락으로 추정되는 마을인데, 이 마을(고란리)에도 도초면민 전체가 모여 국태민안과 면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신당의 건물은 적었지만 초목이 수려하여 대낮에도 출입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위용도 있어 주변에서는 소변은 물론 웃옷을 벗고 그 앞을 지나면 큰 화를 입고, 부락민은 물론 전 면민이 생활상 어려움에 처하는 등 피해를 받아왔다. 그러던 중 마을앞을 지나는 도승을 만나 사정애기를 하고 방법을 물으니 "장승"을 세우면 화를 면하리라 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면서 신당은 점멸되고, 지금은 장승만 남아 마을의 재앙을 막아 주는 수호의 상징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월래는 나무로 만든 장승이었는데 1938년 석장승으로 바뀌어졌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길죽한 얼굴 모양에 눈은 앞으로 돌출되어있고 양미간은 좁다. 길게 늘어진 코와 귀, 입은 치아를 드러내 놓고 있어 앞에서 보면 위압감일 주면서도 익살스러운 인상을 풍긴다. 몸에는 웃옷을 입고 있는데 소매자락 아래로 손가락이 보인다. 2004.6 도초면 고란리 주민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