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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러시아인 사바찐이 바라본 을미사변 41 녕합의 방에는 왕비를 비롯한 3명의 여인이 있었다. 이경직은 왕비를 구하기 위해서 일본자객에게 두 팔 을 높이 들었다. 이 순간 일본자객은 칼을 번쩍이면 서 이경직의 두 팔을 잘랐다. 이경직은 피를 흘리면 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경직이 방바닥을 뒹굴며 몸을 가누지 못하자 일 본자객은 이경직을 옆방으로 옮겨서 폭행했다. 이경 직이 간신히 몸을 빼서 마루 끝으로 나아갈 즈음, 일 본자객은 고종이 보는 앞에서 이경직의 다리에 총을 쏘았고, 칼로 찔러 죽였다. 5시 50분경 『한성신보』 편집장 고바야카와는 건 청궁에 도착했다. 곤녕합의 오른쪽 왕비의 거실 옥 호루에 여인들의 시신이 안치된 것을 목격했다. 고 바야카와를 비롯한 일본자객은 그 중에 왕비의 시신 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왕비가 어디론가 숨었다는 소식에 곤녕합 주변이 더욱 소란해졌다. 다급해진 일본 군인과 자객은 무 기를 들고 건청궁 주변의 빈 방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 중 일부는 시위대가 버리고 간 총을 이용하여 닫 힌 문짝을 부수었다. 다른 일부는 곤녕합 마루 밑으 로 들어가서 왕비를 찾았다. 6시까지 일본 군인과 자 객은 혈안이 되어서 건청궁의 여기저기를 수색했다. 곤녕합에 침입한지 30분이 지나도 왕비를 찾지 못하 자 일본 군인과 자객은 곤녕합 내부에서 살해된 여 인의 시신을 다시 점검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은 곤녕합 내부에서 살해된 시신을 모두 ‘옥호루’로 옮 겼다. 일본 군인과 자객은 왕비의 모습에 대한 정보 를 입수했다. “왕비가 관자놀이라고 칭하는 부분에 벗겨진 자국이 있다.” 그들은 ‘벗겨진 자국’이 있는 여인을 시신 중에서 발견했다. 사바찐은 그 현장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었다. 다 른 사람의 명령을 기다릴 필요 없이 사바찐은 곤녕 합 난간에서 신속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 작했다. 사바찐은 살고자하는 본능 때문에 자신의 목격을 모두 증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비겁한 자신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생사를 넘나든 을미 사변의 하루를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사바찐은 즈 프에서 기억의 편린을 복원하는 보고서 작성에 매달 렸다. 보고서 완성의 순간 비밀의 방이 사바찐의 마 음속에 꿈틀 거렸다. 그 방문을 열려는 순간 사바찐 은 또다시 본능적으로 그 비밀의 방에 자신을 숨겼 다.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과 및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사학부에서 역사학박사를 받았다. 한국근대사 및 한러관계사를 전공했으며 동북아 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교육연수원 교수, 교양총서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단독 저서로는 『미쩰의 시기: 을미사변과 아관파천』(2012), 『명성황후 최후의 날 』 (2014), 『제국의 이중성』(2019), 『이희, 러시아공사관에서 375일』(2020), 『100년 전의 세계일주』(2020), 『울릉도 1882』(2024) 등이 있다. 필자 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