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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 가평의 얼과 인맥 (중산리 소법리 백둔리) 等地(등지)로 陣地(진지)를 移勳(이동)해가며 官單(관군)討佳(토벌) 에 必要(필요)한 武關(무기)와 擔劍(창검)을 製作(제작)하고 한 편으로 많手(포수)를 迎入 (영입)하여 莫彈(막강)한 義兵(의병)으로 戰列(전열)을 整備(정비)해 나갔으며 春川(춘천)地 方(지방) 義兵(의병)總帥(총수) 李直慣(이직신) 陣營(진영)과도 合勢(합세)하여 副將(부장)이 되는 등 寫國(위국)大義(대의)에 心血(심혈)을 다하셨다. 그러나 -八九六年(1896년) 六月 (6월) 十五 R (15일) 저 有名(유명)한 寶納山(보납산) 戰關 (전투)에서 數千(수천)의 官單(관군)과 對抗(대항)하다 生補(생포)되어 1콕’單(관-군) 參令(참 령)으로부터 降服(항복)하라는 懷柔(회유)를 받기로 하였으나 내 폼은 이미 나라에 바치었 거늘 어찌 옳L검~]械子(난신적자)들에게 I힘f::k(굴복)한단 말인가 하시며 차라리 내 앞에 무릎 꿇고 大평(대역)을 謝罪(사죄)하라 호령하시다 끝내 戰子(적자)들에 의하여 現場(현장)에서 狗節(순절)하시니 어찌 애통해 하지 않으리오. l感(희)라! 나라를 위한 忠、義(충의)의 細叫(절규)가 只今(지금)도 저 寶納山(보납산) 下(하) 에 메아리쳐 들리는데 순절하신 넋을 어찌 말과 글로써 위안한단 말인가? 그러나 春秋(춘 추)大義(대의)는 歷및(역사)와 더불어 永遠(영원)하므로 드디어 -九九O年(1990년) 三月 (3 월) 一 EI (1일) 處泰愚(노태우)大統領(대통령)으로부터 大韓民國(대한민국) 建國勳1章(건국훈 장) 國民賽(국민장)을 追鉉(추서)로 쫓賞(포상)하시니 l뭘寶(진실)로 感微(감격)할 따름이다 이에 地方民(지방민)과 後孫(후손)이 合心(합심)하여 公(공)의 行題(행적)의 一端(일단)을 적어 이 작은 돌에 남기는 뜻은 公(공)의 透微(투철)한 愛國愛族(애국애족)精神(정신)을 본 받아 이를 높이 기리고 後世(후세)에 傳(전)해 萬世(만세)에 龜鍵(귀감)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휠紀 四三二三年 康쉬二 五月 EI (단기 4323년 경오 오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