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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91년 동래여전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후 자신이 학우들을 위해 무엇 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며 학우들의 대표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고 학교당국의 비민주적이고 부정비리로 가득 찬 허위를 알게 되고, 시대의 중심에서 청년학생의 역할과 도리를 찾게 되었다. 또한 다른 동지들이 전문대 운동이 어렵다고 힘들어 할 때 전문대운동의 가능 성과 전문대 학우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가열찬 활동을 전개해 왔다. ’91년 5월 9일 김영삼이 3당 야합으로 민자당을 창당한 것에 대한 전민중적 분노를 모아 전 대협이 제기한 동맹휴업에 대하여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과감하게 제기하고 동지들을 규합해 동래여전(현 동부산대학)에서 처음으로 성사시킨 일은 동지의 학우들에 대한 믿음의 크기를 알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동지는 끼니를 거르고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닌 일이 비일비재하였지만 운 동한다고 집나온 후배에게 자신의 차비를 다 털어주고 집까지 걸어갈 정도로 동 지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위암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도 동지들에게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늘 자기 혁신 속에서 동지들에게 밝은 미소와 환한 웃음을 보 여주었다. 그렇기에 동지의 삶은 부전협-부울전협의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 도로 높은 공적과 깊은 자국을 남겼다. 동지는 민주화투쟁과 학원자주화투쟁 과 정에서 제적되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부산지역 전문대학총학생회협의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95년 9월 30일 위암으로 운명하였다. 육지희 (당시24세) 화 장 1971년 음력 5월 18일 출생 1990년 이사벨여고 졸업 1990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유아교육과 입학 1991년 동래여자 전문대학 총학생회장 부산지역전문대학 총학생회 협의회 부의장 1991년 민주화 투쟁과 학원자주화 투쟁으로 제적 1992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사무국장 1993년 부산지역 전문대학 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장 1994년 부산경남지역 총학생회연합 전문대정책 1995년 9월 30일 위암으로 운명 끝내살리라 |81| |8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