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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지사는 이때가 바로 민족해방과 조국이 독립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호기가 왔다. 결심하고 서기 1942년 항일무력투쟁을 위한 비밀결사인 호의단을 조직 기총사가 되여 성일영 도종표 서대운 성낙돈 정인말 하상청 고창고 성학경 박낙구 김성용 성을용 진기동 황갑수 김성학 정한식 정윤명 이동술 노전용 노오용 외 백수십명의 동지 등을 규합하여 첫 거사로 우리 민족고유의 전통숭조 논리사상을 말살하고 민족정신마저 빼았고저 하는 왜제의 정략으로 일제국조의 우상을 숭배토록 처처에 건립된 신사중에 규모가 큰 현풍신사를 불살라 점차흐려저가는 민족혼을 대오각성케 하였으며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어 고령 청도 창녕 경산 등지에서 일제의 경찰서를 습격 무기를 탈취한 후 영남의 서남지역에서 무장봉기를 계획하고 타비밀단체와 접선을 시도하든 중 배신자의 밀고로 안타갑게도 거사를 이루지 못하고 경남 창녕군 이거면 마수리 산곡에서 대구경찰서장 '후다미' 고등계 주임 '호사가'가 지휘하는 대구 고령양서 무장경찰대에 포위되어 서기 1945년 5월 12일 일경에 체포되었다. 현풍신사방화혐의와 무장봉기계획 등으로 일경의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고 또한 회유로 당했으나 끝내 민족정기를 궆이지 않고 항거하여 나라는 빼앗아도 한 민족의 정신은 빼앗을 수 없다는 대한의 기개를 과시하였다. 당시 왜인들의 임의법인 치안유지법에 최고형인 사형에 처할 수 있다는 법항목에 적용시켜 대구형무소에 송치수감 되었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로 천우신조만을 기다리든 지사는 서기 1945년 8월 14일 일황이 미영중 등 연합국의 카이로와 '포스담' 선언을 수락하여 무조건항복을 하므로서 몽상에도 그리든 해방된 조국의 품으로 도라왔다. 정의는 마침내 승리하였다. 이 공로로 서기 1963년 3월 1일 제44회 3.1절에 국가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포장을 받고 서기 1986년 10월 14일에 국가유공자기장을 받았다. 지사는 해방이 되자 정계에 투신하여 2대와 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여 국리민복과 민주쟁취에 헌신하였으며 한민당 민국당 민주당 민정당의 중진거처 신민당 지도위원 달성 고령경산지구당위원장 민권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지조 있는 정치가로서 조국의 민주발전에 크게 헌신하였다. 또한 지사는